세상일 이라는 것이 가만히 뜯어보면 모든 사람에게 맞는 모범 답안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각자의 능력이 다르다. 결국 각자에 맞는 해답을 스스로가 찾는 수 밖에 없다. 흔히 책에서 제시하는 해답이라는 것은 작가의 해답일 뿐 모두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물론 타인의 해답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힌트 정도의 가치는 분명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각자에 맞는 해답은 타인이 제시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현실을 보면 자신만의 정답을 남에게 집요하게 강요하고, 주입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이면에 답은 한 가지라는 잘못된 관념이 굳어진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관념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학창 시절 시험제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4~5개 보기 중에 한 가지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으로 십수 년간 끊임없이 훈련된 아이들은 세상사 문제의 해답은 딱하나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 그렇게 내면화된 인식의 틀은 시험 칠 때만 사용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적용되어 질 수 밖에 없다. 즉 구조화된 인식의 틀은 세상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틀은 인간관계에서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나와는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고, 분쟁의 원인을 제공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부모관계, 직장 상하관계) 등 일 때는 주입, 윽박지르는 형식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즉 꼰대의 탄생의 저변에는 객관식 시험제도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창의성이라는 게 무엇인가? 기존의 정답을 초월하는 새로운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던가? 그런데 고정된 정답이 존재하고, 그것을 주입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창의성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즉, 객관식 시험이라는 것은 사회의 안정과 발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악의 한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한방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대안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조금씩이라도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서 개선해나가는 노력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 부터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사회 발전의 과정이지, 누군가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서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과대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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